나는 공감성 수치가 꽤 강한 사람이었다. 사실 지금도 조금 그렇다. 어릴 때 부터 tv의 등장인물들이 곤란을 겪거나,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지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어릴 때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tv를 끝까지 보고, 일상생활을 하며 피곤하다, 지친다는 말을 많이 하곤 했다.
이걸 자각하고 등장인물과의 감정과 내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이 영화와 관련한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영화를 다 보기 위해 두 번의 시도를 했다. 몇 년 전 이 영화를 결제하고 시청했지만, 학생들이 죽은 시인의 사회 모임을 알 게 된 씬에서 부터 안 봤다. 지루했고, 걱정스러웠다. 나서서 규율을 어기겠다는 인물을 보면 왜 굳이 저런 행동을 하는지 밉기도 했다. 그 때의 나는 입으로만 현실을 즐기자면서, 어떤 형태로든 벌 받기는 두려운 사람이었나보다. 사실 지금도 별반 다른 거 같지는 않다.
영화 속의 교육환경이 한국의 교육 환경과 참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미권에서는 현재의 한국 교육 환경과 적어도 50년 격차를 가지고 입시만을 위한 교육의 문제점을 자각은 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키팅의 존재는 입시만을 위한 교육, 책을 먹듯이 외우고 토하듯 정답을 써내려가야하는 교육 제도에 침식당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준다. 주어진 것을 그대로 받아드리기 보다 의심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현재를 즐길 것.
현재만 즐기기에는 책임이라는 무게가 있지 않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학생들이다. 책임과 되돌아봄은 메멘토모리에서 말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 시간은 직접 느끼다보면 성인이 되기 전에 깨닫는 경우가 많다. 달튼의 무모한 행동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스스로 생각한 행동이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건 사실이다. 달튼을 비롯한 죽은 시인의 사회 회원들은 이를 기억하고, 책임이라는 무게를 자각할 것이다.

최근에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을 읽었지만, 굳이 리뷰하지 않았다. 많은 내용들이 손가락 사이 모래 처럼 흘러내려가서였다. 하지만 그 중 기억에 남는 반문이 있다. 존재해본 적이 있냐는 반문. 텍스트의 ! 는 나에게 직접 소리치는 거 같았다. 가능하면 모든 규율 속에 사는 게 편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의견을 말하는 게 더 불편하기도 했고, 부담스러웠으니까. 결정적으로 규율 속에서 살려고 했던 게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을 깨닫기도 했다. 원래 그랬어 보다는, 일단 말해보고, 실행하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관리자 역할을 맡기 전까지는 맞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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